외국인 피해자 지원 프로젝트

◆중간보고 및 활동일지◆
2011년9월 ~ 2012년8월
(2012년9월 발행)

◇외국인주민기본법의 제정을 요구하는 전국기독교연락협의회(외기협)◇
*외기협은 2012년1월에 상기명칭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센다이 기독교 연합 피해자 지원 네트워크(동북헬프)◇
◇NPO법인 미소의 도움(NPO미소)◇

<지원 프로젝트>

동일본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고 복귀를 향하여 밤낮 가리지않고 노력하는 동북의 사람들. 그런 동북에 사는 사람은 일본인 만이 아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동북의 땅에서 뿌리를 내려서 사는 외국인 주민들 (2011년3월,재해구조법이 적용된 마을에 살고있던 외국인7만5천명)도 일본인과 같이 또는 일본인보다 더욱 가혹한 조건속에서 살아간다.
노인이나 어린이들 장애자와 같이 "재해 약자" 가 되어있는 재해 외국인의 상황에 눈을 돌려서 그 문제를 같이 해결해 나가자는 의지를 가지고 「외기협」과 「동북헬프」, 「NPO미소」의 세 단체는 해외교회의 지원을 받아 2011년9월 ≪외국
인 피해자 지원 프로젝트≫ 를 설립하였다.
≪지원프로젝트≫는 세 방면으로 진행 하고있다. (1)조사사업、 (2)자립지원프로그램 (3)정보의 공유와 네트워크의 구축이다

조사 사업

외국인 피해자지원의 첫걸음는 「아는 것」 부터 시작했다
재해중에서 얻을 수 있던 외국인에 대한 정보는 전부가 불확정적이고 극단적인 것 이었다. 예를 들어 「여진이나 방사능오염이 무서워 외국인은 전부 도망갔다.」 「혼란의 기회를 틈타서 외국인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피난소나 가설주택에서 외국인들이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다.」 등 이다.
피해지에서 사는 외국인 주민들이 가지는 문제란 어떤것인가? 그 문제의 해답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 세개의 방법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그 다음에 우리는 2012년 4월 조사활동의 확대와 조사를 지원으로 이어나가기 위하여 「외국인 피해자 지원 센터」 를 센다이에 설치했다.
이러한 조사와 만남, 지원 속에서 피해 입은 외국인이 가지는 문제의 실태가 보이기 시작했다.
① 사람을 통한 듣기 조사
일본에 사는 외국인은 그 출신국(민족)별로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살고있다. ≪지원센터≫ 는 각 언어에 대응할 수 있는 조사원을 배치하여 각각의 커뮤니티를 통한 조사 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전화 상담소를 설치하여 잡지를 관계 각처에 배포하여 외국인 피해자의 연락을 기다렸다.
②가설 주택의 방문 조사
피해지의 외국인의 분포는 예상보다 광대한 범위에 퍼져있었다. 그래서 조사원을 미야기현의 미나미산리쿠쵸나 이시노마키시 등에 연일 파견하여 가설주택을 돌아 가면서 조사활 동을 했다.
조사활동에 임하는 조사팀은 각 교회나 아시아학원등에서 기부받은 쌀을 「희망의 쌀」 로서 방문한 가설 주택에 배달하는 「희망의 쌀 프로잭트」 도 실시하였다. 미나미산리쿠쵸에서는 "NPO미소"가 가설주택 60군데를 다 돌면서 모든집에 쌀을 배달을 하였다.
③연구자 및 자치체 공동 앙케트 조사
동북학원대학의 곽 연구실에서는 재해외국인의 상황을 상세하게 조사하고 분석 하기위한 앙케트 용지를 작성했다. 그리고 2012년3월 이시노마키시청의 협조를 받아 이시노마키시에 거주하는 20세이상의 외국인 약400명에 앙케트를 보내서 그중에 92명의 답변을 받았다.
또한 답변중에서 「동북헬프」「NPO미소」 에 지원을 요청한 외국인39명을 대상으로 「지원센터」는 6월부터 면접조사와 긴급지원을 시작하였다.

자립지원프로그램

①외국인 피해자와 「함께하다」
일반의 피해자 지원과 같이 외국인 피해자 지원도 본인들의 생활이 자립을 할때 까지의 과정을 「함께하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하고있다.
조사활동과 외국인 피해자들과의 만남속에서 보이는 그들의 요구에 대응하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지원을 하고 있다.
②긴급 지원
조사활동과 동시에 시청이나 입관의 동행지원, 부모를 잃은 어린이(외국과 관련있는 어린이) 에 대한 취학지원등 여러가지 긴급 지원을 하고 있다.
③일본어 교실
동북에 정주하는 외국인들 중에서 특히 많은 비율을 점유하는 것은 1990년대 이후에 며느리 부족의 농촌이나 어촌으로 국제결혼으로 온 이주자들이다. 여성들과의 만남으로 보인 큰 과제는 언어 습득이 모자른것으로 인한 「커뮤니케이션 장해」 였다. 재해전 부터 있었던 이 문제는 재해로 인한 가족, 재산, 생활수단의 상실을 통하여 그녀들의 입장을 더욱 난처하게 하고 있다.
그런 그녀들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상승하여 재해후의 생활환경의 대응과 취직 활동을 돕기 위하여 미야기현 오오사키시 후루카와, 미나미산리쿠쵸, 이시노마키시에서 한국인, 중국인, 필리핀인등 이주자 여성들을 대상으로한 일본어 교실을 실시하고있다. 또 외국과 관련을 가지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모국어 교실의 준비도 시작했다.
④후쿠시마 필리핀인 여성의 자립지원
후쿠시마 제일 원자력 발전소의 붕괴사건으로 인한 방사능오염은 외국인 정주자 들의 건강과 생활기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속에서 불안과 싸워가면서 여러가지 이유로 후쿠시마에서 살아가는 것을 결심한 필리핀 여성들의 그룹이 있다. "하와크카마이" (HAWAK KAMAY FUKUSHIMA = 손을 잡자 후쿠시마) 라는 이름을 붙인 이 그룹은 2011년3월 생활 기반의 확보와 보다 강건한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자조 조직을 설립했다. 현재는 영어 회화 교실을 시작하면서 유아를 위한 프리 스쿨 설립의 준비를 시작했다.
우리는 그녀들의 활동을 YWCA나 성공회, CTIC(카톨릭 동경 국제 센터) 등의 교회 관계 기관과 같이 지원 하고있다.

정보의 공유와 네트워크의 구축

피해지에서 외국인의 지원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프로잭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각 자치체의 국제교류회나 각 종교단체, NPO, NGO의 지원 프로잭트등 여러 입장의 사람들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피해지에 정주하고자 하는 외국인들을 돕고있다.
우리는 이러한 활동의 정보를 주고받고 또한 협력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자 심포지움을 2회 개최 하였다. 2011년11월8일에는 교회 관련기관, 개별의 교회, 국제 교류회, 인권에 관한 NGO, 연구자들을 모아서 일본 기독교단 동북 교구 센터 엠마오에서 심포지엄 「외국인 피해자는 지금 – 우리들의 과제」 를 개최하였다.
이러한 열린 의논의 장소를 통하여 외국인 피해자 지원의 과제와 목표를 확인하며 정보를 나누고 있다.

≪외국인 지원 센터≫2012년 활동일자

* 1월7일(토) 해외 교회에서의 헌금의 창구가 되어있는 NCC-JEDRO (일본 기독교 협의회 애큐매니컬 재해 대책실) 의 연수회에 참가. (센다이)
* 1월10일(화) 도쿄 에도가와 종합인생대학에서 사토우 노부유키가 강연 「동일본 대지진의 외국인 피해자에서 일본사회에 대하여 생각한다.」
* 1월17일(화) <지원 프로잭트> 공동 운영 의원회와 확대 검토회.(동북핼프) 「외기협」, 「동북헬프」, 「NPO미소」의 3자로 공동 운영 의원회를 월1회 여는 것과 동시에 다른 교회 관련기관의 실무자나 연구자를 모아서 확대 검토회를 열어서 활동의 방향성과 내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1월22일(일) 일본 성공회 오오사카교구의 학습회에서 사토우가 강연 「동일본 대지진에서의 재일 외국인」.(죠난 기독교 교회)
                  ◆
* 2월7일(화) <지원프로잭트> 실무자 회의. (동북헬프)
* 2월18일(토) 도쿄 오오타쿠 다문화 공생 센터 연속 강좌에서 사토우가 강연. 「외국인 피해자의 실체에 대해서」
*2월21일(화) 지진 재해전부터 재일 필리핀인의 지원 활동을 해온 교토YWCA의 당담자와 일본YWCA 지진 재해 당담 간사들과 같이 「하와크카마이」의 필리핀 여성들과 만나서 그녀들의 영어 회화 교실 프리 스쿨 설립으로 인한 자립, 취로 프로그램을 전면적으로 지원하기로 결정.
*2월27일(월) <지원프로잭트> 공동 운영 의원회와 확대 검토회. (동북헬프)
                  ◆
*3월13일(화) <지원프로잭트> 공동 운영 의원회와 확대 검토회. (동북헬프)
*3월22일(목) 화와크카마이 YWCA당담자들과 후쿠시마 회의.
*3월25일 오오사키시 후루카와 지구에서 「행복한 일본어 교실」 을 개시. 대상은 한국인 이주 여성으로 강사는 센다이에 있는 일본어학교 「국제 아카데미」에 위탁하여 매주 화, 목요일의 오후1시~3시 전16회로 실시.
*3월말 이시노마키시 기획부 시민협동 추진과는 시내의 20세이상의 외국적 시민 400명을 대상으로 「이시노마키시 재주 외국인의 피해상황과 다문화 공생에 대한 앙케이트」를 우송.

●이시노마키시 조사
조사표는 동북 학원 대학의 곽기환연구실이 작성하여 질문 사항 28항목, 16쪽이 된다. 또한 일본어판 외에도 영어, 중국어, 한국어, 필리핀어, 타이어판도 작성하였다. 이시노마키시는 그것을 시내의 외국인에게 송부하였다. 그 번역, 인쇄, 발송, 집계의 각 비용은 <지원프로잭트>가 부담하였다.
                  ◆
*4월2일 (월) 동북헬프 사무소에 <외국인 피해자 지원 센터> 를 설치.
●외국인 피해자 지원 센터
<목적>
• 외국인(외국적이거나 외국에 루츠를 가지고 있는 사람) 에서 3.11대지진으로 지금까지의 생활에 큰 변화와 지장을 가지게된 당사자와 그 가족의 케어를 한다.
• 조사, 상담활동으로 얻은 정보를 정리하고, 긴급한 사례에 대응한다.
<활동>
• 외국인 피해자의 조사, 상담활동.
• 지원자, 지원단체의 연락조절. 스태프와 협력단체, 변호자, 연구자가 즉응할 수 있는 태세를 구축.
• 자립지원 프로그램의 준비, 실행.
• 정보의 정리와 발신. 외국인 이재자의 현황에 대한 정보를 교회, 일본사회, 해외에 발신
<사무국>
센터장과 시간제근무원 (한국인, 중국인, 타이인, 일본인)으로 운영. 실무책임자를 당분간은 "외기협"에서 파견.

*4월3일(화) <지원센터> 스탭 회의.(동북 헬프)
*4월10일(화) <지원센터> 스탭 회의. <지원프로잭트> 공동 운영 의원회와 확대 검토회. (동북헬프)
*4월10일(화) 「이시노마키시 재주 외국인의 피해상황과 다문화 공생에 대한 앙케이트」회수. 최종적으로 92인의 회답을 회수하였다.
그 집계, 분석을 곽기환과 이성희를 중심으로 실행.
*4월16일(월) 하와크카마이 YWCA당담자들과 후쿠시마 회의.
*4월17일(화) <지원센터> 스탭 회의. (동북헬프)
*4월21일(토) <지원프로잭트> 공동 운영 의원회. (동북헬프)
*4월21일(토) 심포지엄을 동북 학원 대학에서 개최. 학생을 중심으로 260명이 참가.
●제2회 심포지엄
◇"동일본대지진에서1년 – 외국인 이재자의 현주소" 를 주제로 4월21일 오후에 동북학원대학 츠치토이캠퍼스의 오시카와 기념홀을 회장으로 심포지엄을 개최.
◇제1부 "외국인 이재자의 현주소" 에서는 3명의 연구자가 보고. 요시토미 시즈요(오오사카 대학 글로벌 컬래보레이션 센터) "피해자의 누구도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서 – 경험은 어떻게 쓰이는가" / 마츠오카 요우코 (이와테대학 국제 교류 센터) "[차이]를 인정하는 사회를 지탱하는 언어교육의 가능성" / 이선희 (동북대학 국제 고등 연구 교육 기구) "3.11대지진에서의 매개력과 외국인 여성의 엠파워맨트"
◇제2부 "외국인 지원의 과제" 에서는 스즈키 애리코 (코쿠시칸 대학)를 코디네이터로 하여 오오무라 마사에 (미야기현 국제화 협회) / 키쿠치 태츠카 (센다이 국제 교류 협회) / 니시가미 키애코 (국제 볼런티어 센터 야마가타) / 각기환 (동북학원대학 경제학부 공생사회경제학과)가 각각 보고하여 전체로 토론.
*4월24일(화)  <지원센터> 스태프 회의. (동북헬프)
*4월27일(금)  NCC독일 의원회의 공개 세미나 "재해에서의 사회적 약자와 교회는 어떻게 함께하는가?" 에서 사토우가 강연. "동일본 대지진과 외국인" (토미사카 기독교 센터)
*4월29일(일) 이시노마키시의 이주여성 (한국) 2명에게 면접 조사. (시내)
                  ◆
*5월1일(화)  <지원센터> 스탭 회의. (동북헬프)
*5월2일(수)  미나미산리쿠쵸의 가설주택옆에서 "케센어<일본어>교실"을 개시. 매주 수요일 16시~18시.
*5월8일(화)  <지원센터> 스탭 회의. (동북헬프)
*5월15일(화)  <지원센터> 스탭 회의. <지원프로잭트> 공동 운영 의원회와 확대 검토회. (동북헬프)
*5월16일(수)  하와크카마이는 후쿠시마시내에 설치한 영어 회화 교실과 프리 스쿨의 개소식을 하고, 개강을 향하여 자립, 취로 프로그램을 시작.
*5월21일(월)  하와크카마이, YWCA당담자들과 후쿠시마회의.
*5월22일(화)  <지원센터> 스태프 회의. (동북헬프)
*5월25일(금)  "후루카와 일본어 교실" 제1기 종료.
*5월29일(화)  <지원센터> 스탭 회의. (동북헬프)
*5월30일(수) "이시노마키시 재주 외국인의 이재상황과 다문화 공생에 대한 앙케트"의 집계를 마치고 이후의 진행에 관해서 이시노마키시, 곽기환연구실, 동북헬프, NPO미소의 4자 협의를 했다. (시청) 앙케이트 회답자 92명중 앙케이트 용지의 끝에 성명과 연락처를 명기하여 "동북헬프" "NPO미소"에 지원을 요청한 39명에는 <지원센터>가 연락하여 6월부터 면접 조사를 하게 되었다. 면접 회장은 시청에서 준비하기로 되었다.
                  ◆
*6월5일(화) <지원센터> 스탭 회의. <지원프로잭트> 공동 운영 의원회. (동북헬프)
*6월5일(화) ~ <지원센터> 스탭이 이시노마키시의 외국인 의뢰자 39명에게 전화나 메일로 연락을 취하여 의뢰ㅍ내용의 확인과 면접 일정의 조절을 시작한다.
*6월6일(수) 이시노마키시의 외국인39명의 면접 조사를 시작하기 위해 오리엔테이션.(동북 헬프)
*6월12일(화) <지원센터>스탭 회의. (동북헬프)
*6월13일(수) <지원센터>는 곽기환, 이선희 두 연구자와 같이 이시노마키시의 외국인의 면접 조사를 시작한다. 이 날은 이주 여성(중국)과 재일 중국인 고령자의 2명과 면접. 의뢰자가 고령자이거나 유아가 있는 경우는 자택이나 가설 주택에 가서 면접을 했다. 또한 의뢰자의 제일 언어에 대응하여 중국어, 한국어, 필리핀어, 타이어의 스탭이나 자원 봉사자가 동행했다.
*6월13일(수) 하와크카마이, YWCA당담자들과 후쿠시마 회의.
*6월15일(금) 오오사키시의 "후루카와 일본어 교실" 제2기 개시.
*6월16일(토) NCC교육부가 전국의 교회학교, 기독교 학교에서 모집한 "평화의 정 모금 2011" 에서 지진으로 아버지를 잃은 어린이들 (외국에 관련을 가지는 어린이) 5명에게 취학 지원금을 지원했다. (미나미산리쿠쵸, 이시노마키시, 하나야마무라)
*6월19일(화) <지원센터>스탭 회의. (동북헬프)
*6월19일(화) ~ 20일(수) 재일 대한 기독교회 전국 여성회의 연수회(참가자:49명) 에 동행하여 코오리야마 – 후쿠시마 – 미나미산리쿠 – 이시노마키 – 센다이의 피해지를 돌으며 피해자와 지원 단체를 안내.
*6월20일(수) 이시노마키시의 재일 한국인 고령자 2명에게 면접 조사. (자택, 가설 주택)
*6월26일(화) <지원센터>스탭 회의. (동북헬프)
*6월27일(수) 이시노마키시의 이주 여성(한국)과 재일 한국인 고령자의 총2명에게 면접조사. (시청, 가설주택)
*6월30일(토) 이시노마키시의 이주 여성(필리핀, 타이)의 2명에게 면접 조사.
                  ◆
*7월3일(화) <지원센터>스탭 회의. (동북헬프)
*7월4일(수) 이시노마키시의 재일 한국인 삼세와 이주 여성(중국) 총3명에게 면접 조사. (시청)
*7월8일(일) 하와크카마이 주최의 "후쿠시마 이주자 훼스티벌". 후쿠시마현 내의 필리핀인 여성과 그 가족을 중심으로 250명이 참가. 우리는 후쿠시마현하의 필리핀인, 한국인, 중국인등 이주여성 전체에 지원을 하고자하는 "후쿠시마 이주 여성 지원 네트워크"의 참가를 호소하였다.

●후쿠시마 이주 여성 지원 네트워크
<목적>
• 후쿠시마현 하의 이주 여성을 지원하는 교회 관련 기관이나 시민 단체등 각 단체의 활동의 제휴를 하며 조사 활동과 각종 협동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 당면 후쿠시마현 하의 필리핀인 이주 여성 그룹 하와쿠카마이의 자립, 취노 프로그램을 지원함과 동시에 한국인이나 중국인등 이주 여성의 커뮤니티 작성을 지원한다.
• 장래적으로는 후쿠시마현하의 이주 여성과 일본인의 협동 네트워크로서 기능 할 것을 목표로 한다.
*7월10일(화) <지원센터>스태프 회의. <지원프로잭트> 협동 운영 의원회. (동북헬프)
*7월11일(수) 이시노마키시의 이주여성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총4명에게 면접조사. (시청등)
*7월17일(화) <지원센터>스탭 회의. (동북헬프)
*7월18일(수) 이시노마키시의 이주 여성(타이완)에게 면접 조사. (시청)
*7월18일(수) 하와크카마이, YWCA 당담자들과 후쿠시마 회의.
*7월 24일(화) <지원센터>스탭 회의. (동북헬프)
*7월25일(수) 이시노마키시의 이주 여성(한국) 2명에게 면접조사. (시청)
*7월25일(수) 미나미산리쿠쵸 프로그램 "케센어<일본어>교실" 제1기 종료.
*7월31일(화) < 지원센터> 스탭 회의. <동북헬프>
                 ◆
*8월1일(수) 이시노마키시의 이주 여성(필리핀) 2명에게 면접 조사. (시청)
*8월3일(금) 이시노마키시의 이주 남성(미국)에게 면접 조사. (전거후 주소인 센다이 시내에서)
*8월6일(월) <지원센터> 스탭 회의. <지원프로잭트> 협동 운영 의원회. (동북헬프)
*8월16일(목) 이시노마키시의 이주 여성(필리핀)에게 면접 조사. (시청)
*8월17일(금) <지원센터> 스탭 회의. (동북헬프)
*8월21일(화) <지원센터> 스탭 회의. (동북헬프)
*8월21일(화) 센다이의 필리핀인 이주 여성들의 자립, 취로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한 준비회. (센다이YWCA)
*8얼22일(수) 이시노마키시의 이주 여성(중국)에게 면접 조사. (시청)
*8월26일(일) 후쿠시마 이주 여성 지원 네트워크의 제1회 세미너. (후쿠시마시)
*8월29일(수) 이시노마키시의 이주 남성에게 면접조사. (시청)
*8월30일(목) <지원센터> 스탭 회의. (동북헬프)

*이 외에도 전화를 통한 상담 활동을 비롯하여 면접조사, 시청이나 입관국으로의 동행, 지원할동이 <지원센터>의 스탭이 실시하고 있다.

이시노마키시조사로 보는
외국인 피해자의 "현황" 과 "마음"

• 최대의 피해를 입은 자치체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제일 많은 피해자를 낸 자치체다. "죽은자" 3251명, "관련사망" 220명, " 행방불명자" 476명에 미친다. (2012년8월말 시점) "죽은자"수 안에는 외국인 7명도 포함한다.
*관련사망은 직접사이외로 지진이 원인으로 돌아가셨다고 인정받은 분.

이시노마키시는 재해 전에는 외국인이782명 살았었지만 지진후에는 513명이 되었다. 2012년 4월말 시점) 감소한 269명중의 국적별의 내역은 "중국" 246명, "인도네시아" 30명으로 재류 자격별의 내역으로는 "기능실습" 127명, "특정활동" 120명이 된다. 즉 재해후의 감소의 태반은 수산물 가공 공장등에서 일하던 중국, 인도네시아의 "연수생, 기능실습생"의 귀국으로 인한 것 이라고 상상이 된다.

• 시내 거주의 외국인
지진부터 1년, 지금 이시노마키시에 사는 외국인은 "중국" 201명, "한국, 북한" 124명, "필리핀" 74명, "미국" 29명, "이도네시아" 14명, "타이" 11명, "브라질" 12명……으로 이어간다. 재류자격별로는 "영주자" 185명, "일본인의 배우자등" 80명, "특별영주자" 42명, "정주자" 35명……으로 된다. 말하자면 "연수생, 기능연수생" 을 제외하면 시내재주의 외국인의 다수가 일본인과 결혼하는 중국인, 한국인, 필리핀인등 이주 여성이다.
이번의 이시노마키시와 곽기환연구실의 공동조사의 앙케이트 회답자 92명에서 그 국적별 내역도 재류자격별내역도 거의 비슷한 것으로 보아서 앙케트의 회답 내용은 시내에 재주하는 외국인 전체의 "상황"과 "마음"을 거의 나타내고 있다고 상상된다. ("연수생, 기능연수생"은 7명에서 회답이 왔었다만 본인에게 전달되지 않는 앙케이트가 많이 생겼었다고 본다.)
여기서는 앙케이트 회답의 제1차 집계결과 (미나미산리쿠쵸에서의 예비조사의 결과도 포함되어 있다.) 를 보아가면서, 또한 면접 결과의 지견도 합하여 외국인 피해자의 "현위치" 를 드러내고자 한다.

• 쓰나미
3월11일 이시노마키에 재주하는 외국인의 대다수가 자택이나 직장에서 지진과 쓰나미를 만났다.
우리가 면접한 이주 여성의 대부분이 그 때의 공포와 혼란에 대해서 눈물저어가며 모국어로 이야기를 했다. "남편과 어머니(의모)를 뺏아간 바다를 다시는 보고싶지 않다." 고 말하는 이주 여성도 있었다. 그녀는 지금 바다에서 20km가량 떨어진 이웃마을의 가설주택에서 고등학생의 딸과 살고있다.

• 가옥의 전파괴, 반파괴
가옥도 가재도 무사했던 외국인의 가정은 얼마없었다.
집이나 아파트의 1층이 쓰나미에 쓸려가서 2층에서 생활을 하고있는 가족, 집이 전파괴나 반파괴가 되어서 다시 짓거나 개축 할 예정이 서지 않은 채로 가설주택에 사는 가족등 여러가지다.
남편은 부모가 사는 가설 주택에 동거하고 본인은 센다이의 친구집에서 사는 이주 여성도 있었다. 이 부부는 하루라도 빨리 별거 생활을 해소하고 싶다 생각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지은 집의 1층 부분이 쓰나미로 떠내려가서 개축하면 이중의대출이 되기 때문에 결정을 못하고 있다.

• 직장을 잃은 이주 여성들
지진전 이주 여성의 대부분은 무직이거나 수산가공장이나 수산물판매등의 직장에 비정기고용(임시고용, 파견사원) 받고 있었다. 그러나 3.11지진과 이로인한 쓰나미, 화재로 그녀들의 대부분은 직장을 잃어버렸다.

• 이주 여성들의 배우자
그녀들의 "배우자"의 직업을 보면 그들은 지진전 어업, 농업을 비롯하여 수산 가공이나 수산 판매, 운송등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경영자, 상시고용, 자영업" 38명에 비해 "임시고용, 파견사원" 17명이 되어있다. 즉 유직자의 30% 가까이가 비정기 고용 이었다. 그리고 지진후에는 "자영업"은 반수가 되었다.
그들 배우자의 취로 형태나 업무내용은 지진전, 후에서 상기외에는 큰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지진전에 근무했던 회사가 망하거나 휴업하여 "같은 업종"의 다른 회사에서 일하거나, 매일 4시간을 들여서 다른 지역의 회사에 다니는 경우도 있다. 또한 어업,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아직 "전면적 재개"의 전망이 않보이고 있다.

• 이주 여성의 가정의 "빈곤화"
지금까지 파트 타임등으로 일해왔던 이주 여성(유직자)의 반이상이 또한 그 배우자는 35% 가까이가 지진으로 수입을 "완전히 잃다"거나 "반이 되었다".
즉 이주 여성과 그 가족의 대부분은 자택이나 가설 주택에서 "평온"을 되찾은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장래의 생활설계"를 못 그린채 지원금을 써서 매일을 살아가는 상태다.

• 이주 여성의 취로지원의 과제
이주 여성의 대부분이 취로에 대한 정보를 강하게 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들의 대부분은 일본어의 일상 회화를 할 수 있어도 일본어를 "읽는" 것 그리고 특히 "쓰는" 것은 곤란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까지 면접해온 이주 여성중 에서 "일본어로 이력서를 쓴다"는 것을 할 수 있는 이주 여성은 얼마 없었다. 그녀들이 원하는 "일본어 학습의 기회" "취로를 위한 학습의 기회"는 아주 절박한 요구로서 존재한다.

• 외국인 피해자가 원하는 것
앙케이트 조사에서는 이 외에도 생활정보를 비롯하여 안전한 피난장소나 방사능에 관한 정보, 아이들을 키우기위한 지원, 어린이들을 향한 계승 언어 ・ 계승문화의 교육, 같은 나라 사람들과의 교류의 기회, 일본인과 교류할 기회등 특히 이주 여성들의 요망이 각각 회답자의 핍박함과 같이 제시되어 있다.
그 하나하나의 소리에 시나 현, 정부, 그리고 지역사회와 우리들이 어떻게 대응하는가 그것이 지금의 과제다.

• 고립하는 재일 한국인, 재일 중국인
이시노마키시에 사는 외국인의 대부분이 일본인과 결혼한 이주 여성이지만, 10% 가까이가 "특별영주자"등의 재일 한국인, 재일 중국인이다. 그러나 앙케이트 회답 으로는 그들의 상황을 거의 알 수 없었다.
다만 앙케이트 회답자중 4명과 면접 할 수 있었다. 그중의 3명은 제국시대의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 2세"의 고령자다. 4명의 히어링조사로는 동포 사회에서도 지역 사회에서도 또한 친족한테서도 고립한채 3.11지진과 만난것, 또한 지진후의 혼란속에서 지원 정보를 얻지 못한채 고립하여 살아왔다는 것을 듣고 우리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 면접조사에서
앙케이트 회답자 92명중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한 외국인은 39명이다. 이중 24명과는 시청이나 자택에서 면접하여 9월중에는 완료한다.
의뢰 내용에서 가설 주택의 입거 신청, 생활 보호의 신청, 관련 단체의 보장금 신청 등, 즉시 대응 할 수 있는 안건에 대해서는 추가 면접과 동행 지원을 동시에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의뢰 내용에 응해야할 우리들의 조언이나 지원수단은 어렵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의뢰자의 국적이나 연령, 일본으로 온 이유, 피해상황, 피해당한 후의 본인과 가족관계, 앙케이트 기입당시와 그 후(2개월후)의 상황등으로 의뢰ㅍ내용과 핍박함이 전혀 틀려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의뢰자의 대부분은 "취로"를 절망하고 있지만, 이시노마키시의 각종사업의 부흥 속도뿐만이 아니고 본인의 일본어 능력이나 특히 가족관계등으로 각각의 절박함 과 그 대책도 크게 틀려진다.
이시노마키시와 곽연구실의 이번의 공동조사는 재해당한 지자체로서는 전국에서 처음의 외국인 실태조사며 그러한 의미로는 아주 획기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조사 결과를 우리는 과연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제 단기적 지원에서 중,장기적 지원으로 이행한다. 거기서는 먼저 이주자 커뮤니티의 자조 조직화 그것을 지탱하여 협동하는 지역사회의 지자체, 교회, NPO, 일본인의 네트워크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과제가 보이기 시작했지만,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동자"가 너무나도 적다.


返回在前的页